[재계 뉴리더] '전선'으로 세계 휘어잡을 '자전거광' 구자열 LS전선 회장
경영·경제 최신서적 탐독… 아이디어는 모조리 메모
"혁신 없이 미래 없다" 모토… 화끈한 성격 소유자
직원 잘 챙기기로 정평… 라디오에 직접 사연 보내기도
- ▲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그는 "한국 사이클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전선’과 ‘사이클’ 없이는 못 사는 남자. 독서광(狂)에 대화 중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국내 1위 전선기업 LS전선의 구자열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LS전선 회장 외에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베트남 명예영사, 전국경제인연합회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감투만 봐도 그의 활동보폭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다.
구 회장의 꿈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우리 대표 선수들이 사이클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고, 또 하나는 LS전선이 2015년 세계 1위 전선기업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의 영문 이름은 크리스토퍼 구(Christopher Koo).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21세기 전선 신대륙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 자전거 없이는 못 살아…동양인 최초 650km 완주 기록 보유
구자열 회장은 1953년생으로 뱀띠다. 서울 출생으로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구평회 명예회장 슬하 3남 1녀중 장남으로 동생으로는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과 구자균 LS산전 부회장, 구혜원 푸른상호저축은행 회장이 있다.
구 회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전거(사이클)다. 그가 자전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시절. 당시 집(약수동)에서 학교(계동)까지 자전거로 통학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자전거를 타면서 학창시절부터 승부 근성과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강한 끈기를 키웠다고 한다. 서울고 재학 시절 갑자기 끼어든 택시를 들이받아 머리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이에 격노한 아버지(구평회 E1 명예회장)는 자전거를 집어던지며 “다시는 타지 마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자전거를 놓지 않았다.
- ▲ 구자열 LS전선 회장(가운데)이 작년 4월 LS네트웍스의 자전거 전문 브랜드 '바이클로' 1호점 개점 기념식에서 웃고 있다.
고려대 테니스부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구 회장은 싱글 수준의 골프 실력을 자랑하고 스노보드와 카약도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춘 스포츠광이다.
그러던 그가 2002년에 사고를 하나 친다. 독일에서 열린 ‘아디다스 주최 트랜스 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 7박 8일 동안 650km를 완주한 것이다. 동양인으로는 최초였다. 구자열 회장은 대회 준비를 위해 7개월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이 중에는 5박 6일 동안 미국 모하비 사막과 콜로라도 강을 달리는 지옥훈련 프로그램도 들어 있었다. 이쯤 되면 취미 수준이 아니라 ‘자전거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구 회장은 산악자전거를 탈 때면 “힘든 일을 정면으로 승부할 때 세상사는 맛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산악자전거는 기업 경영과도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시작을 할 수는 있지만, 끊임없이 폐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자전거를 탄다. 하루에 200km를 달린 적도 있다고 한다.
구 회장은 한국사이클연맹회장도 맡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반드시 ‘사이클 노(No) 메달의 한(恨)’을 푸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를 위해 해외 전지훈련부터 외국인 감독 영입 등 우리 사이클 발전을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 ▲ 지난 2004년 회사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구자열 LS전선 회장(오른쪽 두번째).
◆ 육군 병장 출신…과거와 결별 위해 재고도 태웠다
구자열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1980년에는 뉴욕지사로 발령이 나 6년간 미국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국제금융부장을 맡았다. 1992년에는 LG상사의 일본지역본부 이사가 됐다. 1995년에는 LG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국제부문 임원을 맡았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그를 국제금융 전문가라고 부른다. 미국과 일본에서 근무한 덕분에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다.
구자열 LS전선 회장은 재벌가 자손이지만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다. 최종 계급은 육군 병장. 만 3년간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잦은 해외 출장 길에도 늘 책을 손에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영·경제 최신 서적을 탐독하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모조리 메모해 두었다가 경영에 반영한다.
- ▲ 구자열 LS전선 회장(오른쪽 첫번째)이 지난 2005년 아버지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팔순 잔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회사의 모토인 ‘혁신 없이 미래 없다’(No Innovation, No Future)는 말처럼 스스로 자기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그는 결단력과 함께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다. 2005년 6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에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가동을 앞두고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각 사업장의 창고에서 쓸 데 없는 재고 물량을 꺼낸 뒤 모두 불태워 버리기로 했다. 가치도 없는데 자산으로 잡혀 경영상황만 안 좋게하는 악성 재고상품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전선업체 중 ERP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LS전선이 세계 최초였다. 사내에서 반대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는 자진 신고한 직원에게는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 어두운 과거를 털어내면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실제 2004년 12월 24일에는 한 라디오 방송에 직접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머라이어 캐리가 부른 ‘내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에요’(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신청했고 한해 동안 고생한 임직원과 함께 듣고 싶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직원들은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2005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에는 임직원들에게 빼빼로를 돌리기도 했다.
그는 ‘글로벌’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CEO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4월,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의 주제는 ‘경영 후계자 육성’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다. “해외경험이 없으면 임원자리는 꿈꾸지 말라”는 것이다. 사업 무대가 글로벌인데 해외를 모르고 회사를 이끌 수는 없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발언이다.
◆ 남다른 베트남 사랑…‘전선’ 하나로 세계 제패가 꿈
LS전선은 1996년 하이퐁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베트남에 진출했다. 현재 7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매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억8000만달러. LS전선은 베트남 경제발전과 고용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 외국계 투자기업에게 주어지는 골든드래곤상을 2006년부터 5년 연속 받았다.
구 회장은 평소부터 베트남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10대 수출국이자 전기·전자·중공업·플랜트 등의 산업이 급성장하는 곳이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 뿐만 아니라 양국간 문화교류와 상호 친선을 다지는 데도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8년과 2010년에는 대학생 해외자원봉사단을 파견했고, 지난해에는 그룹 차원에서 호치민에 아동 의료서비스 지원, 현지 대학생 자매결연, 지역 문화체험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5월에는 베트남 명예영사가 됐다. 같은해 7월에는 경기도 안양시 LS타워에 명예영사관을 열었다. 그는 개관식 행사에서 “LS전선 베트남법인은 현지 직원들과 함께 베트남 최대 전선회사로 성장했다”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기업경영을 통해 베트남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나라가 ‘한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LS전선은 24개국에 100여개 사업장을 두고 있는 세계 3위 전선회사다. 지난해 8조8000억원(국내·외 계열사 포함)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목표는 매출 10조원 달성이다. 2015년까지 LS전선을 세계 1위 전선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구자열 회장의 포부다.
조선biz 설성인 기자 seol@chosun.com 2011.04.11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