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웨스트 항공은 1967년 롤린 킹, 라마 뮤즈, 그리고 당신 법인 변호사였던 허버트 켈러허 등 세 사람이 설립했다. 이듬해인 1968년 2월 20일 텍사스 항공 위원회는 텍사스 주내 노선에서 운항한다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사업 계획을 승인하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기존의 3개 대형 항공사(텍사스 인터내셔널, 브리니프, 컨티넨털)가 당국의 임시 행정 명령을 통하여 사업 승인을 저지하려고 시도했다. 결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그로부터 약 3년 6개월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야 정식으로 운항할 수 있었다.
1971년 6월 18일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댈러스 주의 러브필드에 본사를 두고 보잉 737기 단 3대로 텍사스 주의 댈러스, 휴스턴, 샌안토니오 등의 도시에서 운항을 개시했다. 당시 경쟁 항공사들은 텍사스 인터내셔널 항공, 브라니프 항공, 컨티넨털 항공 등이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취항을 막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경쟁 항공사들은 결국 또다시 소송이나 행정 명령을 통하여 취항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심지어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텍사스 주와 인접한 4개 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논스톱 운항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부득이 항공기를 비행시간 한 시간 정도에 해당되는 곳만 운향하는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니치마켓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운항 첫해에 37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1973년 중반 경에야 겨우 손익 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다. 사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1971년 운항을 시작했을 때, 자금난으로 인하여 당초 4대였던 비행기 중 한 대를 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회사측은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모든 사실을 알렸다. 회사측은 직원들에게 운항 횟수를 줄이거나 아니면 비행기가 한 대 부족하더라도 기존의 운항 횟수대로 강행하든가 양자택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밝혔다.
직원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그리고 임원과 직원들은 어떤 기분 상태였을까? 경쟁사가 너무한다는 반발심과 오기가 생겼을 것이다. 이것이 회사를 똘똘 뭉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직원들은 비행기가 부족하더라도 그대로 운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지상 체재 시간을 단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사우스웨스트 항공 특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이륙 시간 단축 노력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하면 정비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단숨에 작업을 끝낸다. 대형 항공기의 턴어라운드 시간이 평균 45분 정도 걸리는데,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항공기는 20분에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비행기가 떠 있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초기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자금난으로 적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튜어디스들에게 아슬아슬한 핫팬츠를 입히고 '전쟁은 노우, 사랑은 예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본사가 있는 러브필드의 이름을 광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 슬로건은 지금도 '사랑의 항공사'라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애교있는 별명에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다음 행선지로 출발할 때까지 기내 청소를 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보유 비행기는 모두 보잉 737 시리즈이다. 현재 800여 대의 비행기 모두가 737시리즈이다. 이렇게 하면 항공기에 대해 필요한 정비, 교육, 운항 등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보잉 737이었다.
그리고 또 돈 안드는 꺼리들을 찾았다. 승객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었다. 기내 방송을 재미있게 한다든지, 승객 중 생일을 맞이한 손님에게 축하 노래를 합창해 준다든지, 조종사가 비행 시간 내내 관광 안내를 해 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가끔 스튜어디스가 기내 가방 보관함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간혹 고객으로부터 '항공기 기내 요원들이 너무 들떠 있고 농담도 재미없다'식의 항의가 오면 '이것은 우리의 경영방침입니다.'라고 회신하며, 더 이상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이용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정중한 표현을 덧붙인다고 한다. 이런 고객의 요구까지 맞추려면 직원들의 노력에 대해 제한을 가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방향을 명확한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법인 변호사에서 최고 경영자로 변신한 허브 켈러허 사장은 "때로는 분노가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오기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중세 시대에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하여 십자군 전쟁을 하는 기분이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화가 나면 더 오기가 생겨 분발을 하는 성격"이라며 자신을 설명했다.
바로 이런 스토리다. ‘부족함은 신이 준 선물이다’는 말이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적은 비행기 대수를 가지고 살아나려면 그에 걸맞는 방법을 찾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니 직원들은 육체적으로는 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유머가 풍부한 켈러허 회장이 펀 경영을 적극화한 것이다. 상대를 웃기는데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니까. 직원들에게도 힘을 주고, 고객에게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있게 한 것이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없고,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진화를 거듭했고, 그 진화의 방향이 결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이었다면 오늘날 생존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펀경영으로, 웃겨서 된 게 아니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들이 기업의 철학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이다.
펀경영부터 따라하면 안된다. 성공 기업으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되 그 근간을 이해하고 현재 자사의 비즈니스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참고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저가 항공 모델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경영 사례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그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대형 항공사들이 자회사를 만들면서 까지 저가 항공사를 만들어 영업을 해 왔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또 성공하지 못한 스토리를 들어보면 분명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철학과는 다른 점이 보였다는 것이다.
- 조성주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sungjucho)에서 발췌